2007년 10월 26일
아프리카 월드컵 "우리는 아프리카를 대표해야한다"
Zoom in Ground
2006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텁 예선 G조,
한국 vs 토고
경기장 안의 관중들
함성
선수들
그리고 승부...
Zoom out Ground
" 대통령의 동생이 협회장으로 있는 토고축구협회가 몇 년 간 FIFA로부터 받았던 '최빈국 축구 보조금' 25만달러를 착복했다 -영국 <더타임즈>"
Zoom in World
2006년 독일월드텁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를 며칠 앞둔 6월 8일, 독일 대사관은 토고 응원단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우리는 은행에 통장이 없다. 난 얼음을 판다. 내가 어떻게 통장 사본을 제출할 수 있겠나." -토고 월드컵 응원단장
세계적인 축제
월드컵..
그들만의 축제?
#
<아프리카 축구>
오랜 식민 역사와 끊이지 않는 내전, 기아와 가뭄, AIDS등으로 고통받는 대다수 아프리카인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희망의 종교'이자 '유일한 유희'이다.
식민지 시절 축구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저항수단이었지만, 아프리카 각국이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1960년대 이후로는 아프리카의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데 축구를 십분 이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을 원하는 세계열강들 역시 아프리카 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현지에 축구장을 건설해주거나 축구학교를 설립하고 축구대회를 후원하는 등 축구를 로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1957년, 아프리카 축구연맹(CAF)이 주관하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수단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이후 2회 대회까지 참가국은 수단, 이집트, 에티오피아 3개국에 불과했지만 차츰 참가팀이 늘어나 오늘날에는 아프리카축구연맹 소속 52개국이 모두 출전하고 있다.
아프리카 축구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이 늘어남과 아울러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성장은 새로운 '축구 대륙'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세네갈이 유럽의 전통 강호 프랑스에 1:0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하는 등 소위 '검은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가나 출신의 마이클 에시엔, 카메룬 출신의 사뮈엘 에토오, 나이지리아의 카누,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 세네갈 출신의 하지 디우푸와 카마라, 토고의 아데바요르 등이 국제적인 스타급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프로프로리그의 르샹피오나는 유럽 내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팀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축구는 그 가능성과 잠재력이 무한한 반면 고질적인 인프라 부족과 사회적 빈곤, 정치 불안 등으로 인해 개별 선수들의 활약 이상의 지역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평가를받고 있다.
여전히 아프리카의 대다수 축구선수들은 유럽이나 다른 대륙으로의 진출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나 다른 대륙으로의 진출한 아프리카 선수들이 우수한 신체조건과 강인한 정신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몸값과 불리한 계약, 인종차별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제2의 노예수출'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각국의 대표팀 선수 중 2/3 이상이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그들의 수입의 대부분을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 이한규는 2002년 한국아프리카학회지에 발표한 '아프리카 축구의 정치적 함의'란 논문에서 '유럽에 진출한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은 운동이 아닌 노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토고>
1884년부터 독일의 보호령이었던 토고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에 점령되었다가 1919년 영불협정으로 영토가 분할되었다. 그 후 서부의 영국렬ㅇ은 가나로 편입된 반면 동부의 프랑스령은 UN의 신탁통치를 거쳐 1960년 '토고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토고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올림피오는 3년만에 쿠데타로 피살되고 뒤어어 그루니츠키가 집권했지만, 1967년에 다시 그나싱베 에야데마가 쿠데타를 일으켜 토고국민연합 (RPT)의 일당독재체제가 확립되었다. 200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토고를 38년간 통치한 에야데마가 쿠데타를 일으켜 토고국민엽합(RPT)의 일당독재체제가 확립되었다. 200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토고를 38년간 통치한 에야데마는 '아프리카 최장기 독재자'로 꼽힌다.
그나싱베 에야데마의 사후 그의 아들인 파우레 그나싱베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집권 세력의 교묘한 부정선거를 통한 권력세습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 되면서 심각한 국론분열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했던 토고의 국가 대표팀은 출전 보너지 문제로 토고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의 동생 로크 그나싱베가 대표로 있는 토고축구협회가 FIFA 지원금의 상당부분을 착복했으며, 이 때문에 토고의 국가대표선수들이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토고 대표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텁에서도 이미 수당 문제로 대회를 망친 선례가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저개발국가들이 대부분인 아프리카에서 특히 각국의 축구연맹은 정쟁과 권력투쟁의 온상이 되고 있다.
<월드컵과 제3세계>
2006년 독일 월드텁 당시 토고 정부는 대對한국전을 앞두고 100명 규모의 원정응원단을 조직했다. 그러나 토고 주재 독일대사관은 응원단 구성원들의 비자 신청서류에 은행거래내역서가 누락되었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일괄 거부했다. 사실상 불법체류를 우려한 독일 당국의 조처였다.
20세기까지 식민지 경쟁에 열을 올리던 유럽의 열강들은, 탈식민지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도 과거 식민지의 값싼 노동력과 경제적 유착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국 경제의 저변을 지탱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문화적 편견과 차별을 버리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로 여전히 약소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능력과 가능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몸값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한 아프리카계 축구선수들은 상대편 관중과 선수들뿐만 아니라 소속 국가 축구관계자들이나 정치인들에게 인종차별적 수모를 겪어 왔다. 프랑스의 내무부장관 사르코지 (현재 프랑스 대통령)는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프랑스 축구대표팀 내에 유색인종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다.
오늘날 유럽의 축구경제가 인종차별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월드컵으로 대표되는 FIFA체제는 지역차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FIFA는 유럽과 남미 등 전통적인 축구강국들을 중심으로 월드컵을 운영함으로써 경제적 이득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흥행을 위해 유럽과 남미 스타플레이어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플레이와 상위권 국가들의 랭킹 경재만 강조할 뿐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주류 약소국에게는 편파 판정 등 부적절한 진입장벽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심판의 오심은 축구 약소국들의 운명" 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월드컵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대표 해야한다."
- 아데바요르, 토고 축구선수,2006 독일 월드컵 출전 인터뷰 中 (현 아스날 FC FW)
2006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텁 예선 G조,
한국 vs 토고
경기장 안의 관중들
함성
선수들
그리고 승부...
Zoom out Ground
" 대통령의 동생이 협회장으로 있는 토고축구협회가 몇 년 간 FIFA로부터 받았던 '최빈국 축구 보조금' 25만달러를 착복했다 -영국 <더타임즈>"
Zoom in World
2006년 독일월드텁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를 며칠 앞둔 6월 8일, 독일 대사관은 토고 응원단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우리는 은행에 통장이 없다. 난 얼음을 판다. 내가 어떻게 통장 사본을 제출할 수 있겠나." -토고 월드컵 응원단장
세계적인 축제
월드컵..
그들만의 축제?
#
<아프리카 축구>
오랜 식민 역사와 끊이지 않는 내전, 기아와 가뭄, AIDS등으로 고통받는 대다수 아프리카인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희망의 종교'이자 '유일한 유희'이다.
식민지 시절 축구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저항수단이었지만, 아프리카 각국이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1960년대 이후로는 아프리카의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데 축구를 십분 이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을 원하는 세계열강들 역시 아프리카 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현지에 축구장을 건설해주거나 축구학교를 설립하고 축구대회를 후원하는 등 축구를 로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1957년, 아프리카 축구연맹(CAF)이 주관하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수단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이후 2회 대회까지 참가국은 수단, 이집트, 에티오피아 3개국에 불과했지만 차츰 참가팀이 늘어나 오늘날에는 아프리카축구연맹 소속 52개국이 모두 출전하고 있다.
아프리카 축구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이 늘어남과 아울러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성장은 새로운 '축구 대륙'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세네갈이 유럽의 전통 강호 프랑스에 1:0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하는 등 소위 '검은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가나 출신의 마이클 에시엔, 카메룬 출신의 사뮈엘 에토오, 나이지리아의 카누,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 세네갈 출신의 하지 디우푸와 카마라, 토고의 아데바요르 등이 국제적인 스타급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프로프로리그의 르샹피오나는 유럽 내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팀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축구는 그 가능성과 잠재력이 무한한 반면 고질적인 인프라 부족과 사회적 빈곤, 정치 불안 등으로 인해 개별 선수들의 활약 이상의 지역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평가를받고 있다.
여전히 아프리카의 대다수 축구선수들은 유럽이나 다른 대륙으로의 진출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나 다른 대륙으로의 진출한 아프리카 선수들이 우수한 신체조건과 강인한 정신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몸값과 불리한 계약, 인종차별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제2의 노예수출'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각국의 대표팀 선수 중 2/3 이상이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그들의 수입의 대부분을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 이한규는 2002년 한국아프리카학회지에 발표한 '아프리카 축구의 정치적 함의'란 논문에서 '유럽에 진출한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은 운동이 아닌 노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토고>
1884년부터 독일의 보호령이었던 토고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에 점령되었다가 1919년 영불협정으로 영토가 분할되었다. 그 후 서부의 영국렬ㅇ은 가나로 편입된 반면 동부의 프랑스령은 UN의 신탁통치를 거쳐 1960년 '토고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토고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올림피오는 3년만에 쿠데타로 피살되고 뒤어어 그루니츠키가 집권했지만, 1967년에 다시 그나싱베 에야데마가 쿠데타를 일으켜 토고국민연합 (RPT)의 일당독재체제가 확립되었다. 200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토고를 38년간 통치한 에야데마가 쿠데타를 일으켜 토고국민엽합(RPT)의 일당독재체제가 확립되었다. 200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토고를 38년간 통치한 에야데마는 '아프리카 최장기 독재자'로 꼽힌다.
그나싱베 에야데마의 사후 그의 아들인 파우레 그나싱베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집권 세력의 교묘한 부정선거를 통한 권력세습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 되면서 심각한 국론분열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했던 토고의 국가 대표팀은 출전 보너지 문제로 토고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의 동생 로크 그나싱베가 대표로 있는 토고축구협회가 FIFA 지원금의 상당부분을 착복했으며, 이 때문에 토고의 국가대표선수들이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토고 대표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텁에서도 이미 수당 문제로 대회를 망친 선례가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저개발국가들이 대부분인 아프리카에서 특히 각국의 축구연맹은 정쟁과 권력투쟁의 온상이 되고 있다.
<월드컵과 제3세계>
2006년 독일 월드텁 당시 토고 정부는 대對한국전을 앞두고 100명 규모의 원정응원단을 조직했다. 그러나 토고 주재 독일대사관은 응원단 구성원들의 비자 신청서류에 은행거래내역서가 누락되었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일괄 거부했다. 사실상 불법체류를 우려한 독일 당국의 조처였다.
20세기까지 식민지 경쟁에 열을 올리던 유럽의 열강들은, 탈식민지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도 과거 식민지의 값싼 노동력과 경제적 유착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국 경제의 저변을 지탱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문화적 편견과 차별을 버리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로 여전히 약소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능력과 가능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몸값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한 아프리카계 축구선수들은 상대편 관중과 선수들뿐만 아니라 소속 국가 축구관계자들이나 정치인들에게 인종차별적 수모를 겪어 왔다. 프랑스의 내무부장관 사르코지 (현재 프랑스 대통령)는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프랑스 축구대표팀 내에 유색인종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다.
오늘날 유럽의 축구경제가 인종차별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월드컵으로 대표되는 FIFA체제는 지역차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FIFA는 유럽과 남미 등 전통적인 축구강국들을 중심으로 월드컵을 운영함으로써 경제적 이득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흥행을 위해 유럽과 남미 스타플레이어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플레이와 상위권 국가들의 랭킹 경재만 강조할 뿐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주류 약소국에게는 편파 판정 등 부적절한 진입장벽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심판의 오심은 축구 약소국들의 운명" 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월드컵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대표 해야한다."
- 아데바요르, 토고 축구선수,2006 독일 월드컵 출전 인터뷰 中 (현 아스날 FC FW)
# by | 2007/10/26 17:40 | Video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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